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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데이터] 전통 사찰 현황

통계와 생활

by kwonpolice 2021. 9. 7.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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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 전통사찰 (수시)

 

민족문화의 유산으로서 역사적 의의를 가진 전통사찰의 정보 데이터로 인허가일자, 영업상태, 사업장명, 소재지주소 등의 정보 확인이 가능합니다.

 

* 좌표계 : 중부원점TM(EPSG:2097)

 


■ 관련 데이터

- 행정안전부에 등록된 우리나라 전통 사찰 개수는 현재 1,902 이다.

 

- 이 중에서 경상북도에 347개가 분포하며, 전라북도, 경상남도 - 경기도 - 전라남도 - 충청북도 - 부산시 - 충청남도 - 강원도 순으로 나타났다.

 

- 강원도가 가장 많을 것 같았는데, 9번째로 나타났다.

 

사업장명 인허가일자 영업상태명 소재지전화 도로명전체주소 승려수 신도수 창립연대 유래연혁
백련사 19880927 취소/말소/만료/정지/중지 993-6443 서울특별시 강북구 4.19로20길 142, 백련사 (수유동) 2 3,000   1931년 건립된 사찰로서 약수터로 잘 알려진 곳이다. 중병에 걸려 생사를 헤매던 사람이 현재의 대웅전 옆 약수를 마시고 회생하여 이곳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주변의 경치도 수려하거니와 휴식 및 체육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아침 산책코스로 널리 알려져 있다.
원통사 19880907 영업/정상 954-9944   2 500   신라 시대인 863년(경문왕 3)에 도선 국사가 도봉산에 절을 창건하여 원통사라 하였으며, 1053년(문종 7) 승려 관월 운개(觀月雲開)가 중창하였고, 1392년(태조 1)에 승려 천은 득일(天隱得一)이 삼창하였다. 그 후 조선 영조 때 승려 유인(宥?)이 중수하고 절 이름을 보은사(報恩寺)라 바꾸었다. 또 1810년(순조 10)에 승려 청화(淸和), 1887년(고종 24)에 승려 응허 한규(應虛漢奎)가 중창하였다.
1928년 비구니 자현(慈賢)이 주지로 부임하여 퇴락한 절의 중건을 발원하고 설악산의 승려 춘성(春城)을 청하여 천일 관음 기도를 올려 1929년에 불전을 중건하였다. 승려 보경 보현(寶鏡普賢)을 데려와 아미타불과 지장보살상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1931년에 천일기도가 끝나자 그해 겨울에 지리산의 승려 보응과 함께 다시 만일 염불회를 시작하여 1933년에 칠성각을 세우고 1936년에 법당 일부와 큰방을 중수하였으며, 이때에 절 이름을 잠시 보문사(普門寺)로 바꾸기도 하였다. 이후 1938년에 독성각이 세워졌다.
구암사 19881028 영업/정상 653-7641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봉덕길 131-144 2 100   -624년(백제무왕35년) 숭제법사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노령산맹의 주봉인 영구산(혀재의 도집산 해발720m) 중턱에 위치
-1392년(조선 태조 원년) 학운선사가 중창
-구암사라 함은 사찰 동편 지점에 거북모양의 바위가 있어 그 이름을 따라 구암사라 명명하였음
-옛부터 유명한 대종사들이 주석하였던 곳으로 조선 영조때 화암종주 설파대사가 거주한 곳이며 이로부터 100여년간 우리나라 불교계의 화암종맥의 법계가 된 사찰임. 임진왜란때 병화로 전소외었으며 조선 헌종때는 유명한 명유인 노사 기정진 선생과 백파스님, 그리고 추사 김정희 선생등이 이곳에서 동거하면서 친교 수학하였던 사찰임.
백파선사의 설법으로 입산수도한 승려가 각처에서 운집하여 단문 중흥조라 불렀고 그 법맥이 고창 선운사와 정읍 내장사, 장성 백양사에 전법되었다.
적조사 19920206 영업/정상 928-3797   3 1,000   적조사(寂照寺)의 창건은 1849년(헌종 15)에 이루어졌다. 흥천사(興天寺)의 사내 암자 성격으로 혜암 성혜(性慧)스님이 창건한 것이다. 적조암은 본래 독립된 사찰로 세워졌던 곳이 아니기 때문에 전체적인 규모는 큰 편이 아니지만, 전형적인 암자의 틀을 잘 갖추고 있는 곳이라 하겠다. 아울러 이곳은 한국 현대불교사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긴 바 있는 경산(京山) 스님의 마지막 수행장소라는 사실로 인해 주목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미타사 19880728 영업/정상 923-1738   20 1,000   '탑골 승방'이라는 이 일대 지명의 유래가 관계되어 있는 미타사(彌陀寺)는 보문사의 바로 옆인 성북구 보문동3가 51번지에 자리하고있다. 사찰규모는 크지 않으나 비구니스님 전문 수량도량답게 매우 단아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미타사는 고려 광종 원년(950)에 혜거국사(慧居國師)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초 문종 원년(1047)에 이 절에 석탑을 쌓자 이 근처를 탑골[塔洞]이라고 부르면서 미타사를 탑골 승방[塔洞僧房]이라고 칭하게 됐다. 따라서 탑골 승방은 인근의 보문사보다 미타사를 지칭한다고 본다. 충숙왕 원년(1314)에 혜감국사(慧鑑國師)가 2차로 중수하였고 1459년에는 조선 단종비 송씨가 3차 중수, 순조 원년(1801)에 4차 중수했다. 헌종 2년(1836)에는 운처(雲剔) 당인선사(堂仁禪師)가 5차 중수하였고, 1969년에 고봉선사(古峯禪師)가 6차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69년 비구니 계주(季珠)가 고봉(古峰)의 도움으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흥천사 19880728 영업/정상 926-1656   17 4,500   흥천사는 태조 6년(1397) 신덕왕후 강씨의 능침사찰로 오늘날 중구 정동에 창건되었던 170여 간의 대사찰로 조계종의 본산(本山)이었다. 태조 이성계는 1396년에 정릉을 조영하고 나서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흥천사를 건립하도록 하였다. 1409년에 흥천사도 능방(陵傍)의 소암(小庵)으로 이전하고 사호를 신흥사(新興寺)라 했다. 중종 5년(1510)에는 화재로 파괴되어 대종을 덕수궁에 보관, 1669년(현종 10)에 이 절이 능침(陵寢)과 너무 가깝다하여 함취정(含翠亭) 유지(遺址)에 이건하고 현재의 자리로 이전한 것은 정조 18년(1794)에 성민(聖敏), 경산(慶山) 두 스님에 의해서였다. 헌종 7년(1841)에 구봉(九峯) 계장(啓壯)스님에 의해 칠성각이 건립, 동 15년에 성혜(性慧)스님에 의해 적조암(寂照庵)이 창건. 철종 4년(1853)에 계장스님에 의해 극락보전이 중수되었고, 동 6년에 순기(舜麒)스님이 명부전을 건립하였으며 고종 22년(1885)에 대방을 중수했다. 1865년(고종 2)에는 흥천사라는 본명을 다시썼다. 1959년에 운파(雲坡), 일우(一雨) 두 스님이 칠성각을 재건하고, 이어서 1967년에 용화전과 1970년에 연화대를 새로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고있다.
청룡사 20010322 영업/정상 054-655-8281   2 300   어림성산록(御臨城山麓)에 소재하고 있는 이 사찰의 조성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의상대사(義湘大師)가 부석사(浮石寺)를 짓기 전에 감천면 주마산(走馬山)의 마두(馬頭)를 진압하기 위해 감천면 증거리의 한천사(寒天寺)와 이 곳의 청룡사(靑龍寺)를 먼저 세웠다고 부석사기(浮石寺記)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찰이 허물어진 것을 1935년 경 불심(佛心)이 깊은 김준팔(金俊八)이 보호각 겸 법당과 요사를 지어 관리하여 오다가 1978년 12월 보조사업으로 중수했다. 이 사찰 안에는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보물제424호)과 석조비로자나불좌상(石造毘盧遮那佛坐像-보물제425호), 삼층석탑(三層石塔)이 있으며, 석조여래좌상은 신라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규모는 높이 0.94m, 좌대 높이 0.67m, 광배(光背) 높이 1.5m의 화강암으로 조각된 불상으로 단정한 용모에 눈, 코, 입의 섬세한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고려초기의 작품으로 규모는 불상의 높이가 1.11m, 대좌(臺座)높이 0.96m로 코와 입은 약간의 마모(磨耗)가 있고 오른쪽 귀가 떨어졌으며, 몸은 넓직하고 풍만한 얼굴에 코, 입이 가까이 있어 특이한 인상이다
장안사 19880721 영업/정상 054-655-1400   1 500   장안사(長安寺)는 예천군 용궁면 향석리 비룡산(飛龍山) 정상 부근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이며 창건 년대는 미상이다. 한 때는 향석리 구읍(舊邑)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속칭 남산사(南山寺)라고도 하였으며, 향석리에 있는 석불좌상과 삼층석탑을 장안사에서 관리하였다고 한다. 장안사와 더불어 유명한 것은 장안사 뒷산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회룡포(回龍浦)이다. 굽이치는 물길이 마을을 돌아서 감싸 육지 속의 섬이 되어 절경을 이루는 이곳은 예천의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장안사 뒷산으로 10분 가량 올라가면 장안사에서 세운 팔각정인 회룡대가 있는데,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그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전에는 의성포라 불렀으나 행정지명으로서의 의성과 혼돈을 막기 위해 근래에 예천군청에서 회룡포로 이름을 바꿨다.
명봉사 19880721 영업/정상 054-653-1365   2 400   명봉사(鳴鳳寺)는 소백산맥(小白山脈)의 깊고 고요한 명봉 골짜기에 위치하였으며, 신라 헌강왕(憲康王) 원년(875) 두운대사(杜雲大師)가 창건하였다. 융성(隆盛)하던 시기에는 그 규모가 백 여동이 되었다고 하는데 여러 차례의 병화(兵火)와 6.25사변(事變)으로 거의 소실(燒失)되었던 것을 전후(戰後) 중건하여 지금은 대웅전, 약사전, 요사채, 칠성각, 부도, 5층석탑, 내원암, 법화암 등이 있으며, 문화재(文化財)는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鏡淸禪院慈寂禪師凌雲塔碑-유형문화재 제3호)와 문종대왕태실비(文宗大王胎室碑-유형문화재 제187호)가 있다.
또한 사내에는 소나무, 전나무, 느티나무 등 큰 나무가 하늘을 가려 한여름에도 추위를 느끼게 하며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흘러 여름철에는 피서지·산책로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한천사 19880721 영업/정상 054-652-6911   1 500   한천사(寒天寺)는 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하였다. 절이 융성(隆盛)하던 때의 규모나 내용은 기록으로 전하는바 없어 알 수 없지만 절에 현존하는 탑상(塔象), 즉 석탑과 철분의 양삼 그리고 사각이나 원형의 거대한 주초석(柱礎石) 등을 보아 신라말기에는 사세(寺勢)가 매우 왕성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지난 1989년 가을 도량 조경작업을 하던 중 청동(靑銅)자물쇠 3점, 청동반자(靑銅半子) 1점, 청동용세(靑銅龍紐) 1점, 청동주완 1점이 발견되어 경주박물관(慶州博物館)에 감정 의뢰한 결과 고려시대 유품으로 확인되어 관리보존상 직지사(直旨寺) 유물전시관에 보관하고 있다.
자운암 19880921 영업/정상 02-882-3839   2 1,500   조선 태조5년(1396년)에 무학대사가 창건하였고, 자운암은 600여년을 지나는 동안 여러번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데 남허스님이 남긴 자운암 기록에는 영조13년(1734년)에 다시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성종이 어머니를 위해 만든 위패가 아직까지 전해져오고 있다고 하며, 창건 당시에는 자운암(紫雲庵)이라고 한 것을 영종13년에 대효선사가 자운암(慈雲庵)이라 개명하였음. 현재의 자운암은 19876년 보륜 스님이 자운암에 들면서 대웅전, 칠성전, 산신각을 세우고 비로소 사찰다운 면모를 갖추게 됨.
약수사 19880921 영업/정상 02-877-7514   3 2,000   조선 세종대왕 때 무영대사가 창건하여 기도의 도량이 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1950년 김처사가 수행을 위하여 이곳에 샘솟는 약수를 마시고 힘을 얻어 초가삼간을 건립하여 약수암이라 칭하였으며, 최초의 창건은 신라시대 문무왕 10년(670년)이며 현재와 같은 절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1974년 겨울 묘희 스님이 약수사에 들어서면서부터 현재와 같은 절의 면모를 갖춤
학도암 19890410 영업/정상 02-930-6611   1 2,000   조선시대 인조2년 건립
정혜사 19880618 영업/정상 041)943-7976   1 100    
향일암 19880727 영업/정상 061-644-4742   2 3,500   -신라 선덕여왕 13년 (644) 원효대사 창건
(소장문화재-문자40호)
흥왕사 20030313 영업/정상     1 -   신라시대 소달이라는 도승이 절을 창건할 때산정에 올라 절터를 잡고자 백일기도를 마치고 산을 둘러보니 현절터만이 하얗게 서리가 내려있어 부처님이 점지한 절터임을 깨닫고 이절을 창건하고 설왕사(설랭이절)라 부르다가 흥왕사로 개칭되었다.
수국사 19881019 영업/정상 356-2001   9 8,000   갈현동 봉산자연공원에 위치한 수국사는 1459년에 창건된 조선왕조의 원찰로 잘 알려져 있다. 세조의 명에 의하여 창건되었으며 1900년 근대 한국불교의 고승이며 청년교육자였던 월초선사가 고종임금의 시주를 받아 중건하였다. 현재 수국사 경내에는 청기와를 올린 외9포, 내15포 108평 규모의 전통 목조법당이 그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한국의 황금사원이라고 불리우는 수국사의 법당은 안팎에 모두 순금인 지금을 입혀서 아침저녁의 햇살이 비칠 때마다 눈부신 빛을 발하여 찾는 이를 감탄케 한다.
원각사 19880923 영업/정상 223-3168   8 2,500   1914년 4월(불기2941년 갑인유하)에 선암사의 포교당으로 창건됨. 금봉의 초창이래 신봉 및 청호스님으로 이어져 1932년 봄 포교사 하석이 부임하였음. 그후 1939년 가을 이필중이 선친 이규석의 유지를 받들어 중수, 확장하였음. 원각사는 초창 당시에는 선암사의 포교당으로서 출발하였으나 현재는 송광사 포교당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
대한불교조계종 호압사 19881219 영업/정상 803-4779 서울특별시 금천구 호암로 278 (시흥동) 3 15,000    
개심사 19830228 영업/정상 688-2256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개심사로 321-86 5 500    
청량사 19881201 영업/정상 962-7390   20 1,500    
장안사 20030320 영업/정상 051-727-2393   4 500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쌍계사라고 했다가 애장왕때 장안사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탄것을 1631년 태의대사가 중건하였고, 1941년 각현스님이 중건하였다고 한다.
선암사 19880719 영업/정상 803-7573   0 -   신라 문무왕 15년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견강사라 하였다가 768년에 선암사라 부르게 되었다.
1581년 4차에 걸쳐 중수하였고 1868년 중건하였다.
달마사 20081219 영업/정상 815-2746   0 -    
호국지장사 19880728 영업/정상 814-5257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 (동작동) 5 -   동작동 국립현충원내 위치한 이 절은 신라말 경문왕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
이후 고려말 공민왕때 보인대사가 중창하여 화장사로 개명했다가 호국영령의 명복을 기원하는
국가의 사찰이 되면서 호국지장사라 개칭했다
원효사 20030307 영업/정상     0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무등산 원효계곡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창건연대는 신라 지증왕 법흥왕 연대(500~539)창건설과 원효국사(617~686)때 창건설건설이 있으나 1980년 6월에 실시된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로 보아 신라말쯤으로 보인다
문무왕때 원효(元曉)가 이곳에 머무르면서 절을 개축한 후부터 원효사 원효암 원효당 등으로 불렀다고 하며 고려충숙왕때인 14세기 전반에 당시 이름있는 승려가 절을 창건하고 원효를 사모하는 마음에서 원효사라고 했다고도한다
조선명종때 문정왕후가 섭정하면서 불교가 진흥하자 이 절에도 승려들이 모여 후일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었던 영규가 이곳에서 수도하였다. 정유재란때 불탄것을 석경이 중창하였고 이후 여러처례에 걸처 중수가 이루어졌다 6.25전쟁때 다시 소실된것을 1954년부터 중건에 착수하여 대웅전 선원 요사 등을 중건하였다
영천포교당   영업/정상     0 -    
진불암 19880721 영업/정상     0 -    
거동사 19880721 영업/정상 336-8165   0 -    
수도사 19880721 영업/정상 054-337-0730   1 300   ㅇ 신라 진덕여왕 시대에 지장율사에 의해 창건
ㅇ 원효대사가 수도하던 곳이라 하여 수도암이라고 칭하였음
봉림사 19880721 영업/정상 054-337-3413   2 200   ㅇ 신라 선덕여왕시 의상대사가 보현산에 창건
ㅇ 고려말 증월대사가 현지에 이건하여 봉림사로 개칭하였음
한국불교태고종 봉원사 20110908 영업/정상 392-3007   48     신라(新羅) 51대(代) 서기 889년 진성여왕 3년에 창건
대한불교조계종옥천암 20030107 영업/정상 02)395-4031   3 1,500    
법성사 19921019 영업/정상 (02)2651-4382   3 600   1909년 조륵스님이 백석사 건립
1930년 벽초화상이 폐사된 것을 복원하여 백련암으로 개칭
1962년 현주지 이용현 스님이 법성사로 개칭
약사사 19880528 영업/정상 2662-2551   4 13,000   신라시대에 주룡선생이 도를 닦던 터라는 전설이 있으며
1747년 이조 영조때 우의정 송인명이 절을 크게 중수하고
1990년에 현 건물에 중수
조선후기에 개화사를 약사사로 개칭
봉영사 19621226 영업/정상 031-571-0555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2로 84-77 3 800   봉영사는 진접읍 천점산에 있는 사찰로 599년(신라 진평왕21)에 창건하고 봉인암이라고 불렀으나 1755년(영조21)묘역을 순강으로 꾸미면서 절 이름도 봉영사로 바꾸었다.
천축사 19880718 영업/정상 02-954-1474   5 5,000   천축사는 서울시 도봉구 만장봉 동쪽 기슭에 자리한 사찰로, 이 절을 천축사(天竺寺)라고 이른 것은 고려 때 인도승려 지공(指空)이 나옹화상(懶翁和尙)에게 이곳의 경관이 천축국의 영축산과 비슷하다고 한데서 유래되었다. 천축사의 연혁은 신라 673년(문무왕 13)에 의상대사가 의상대에서 수도할 때, 제자를 시켜 암자를 짓게 하고, 옥천암(玉泉庵)이라 한 것에서 출발하였으며, 그 뒤 고려 명종 때에 근처 영국사(寧國寺)의 부속암자로 맥을 이었다. 이후 조선시대인 1398년(태조 7)에 태조가 옛날 이 곳에서 백일기도하던 것을 상기하여 절을 중창하고 천축사라는 사액을 내렸다.근대에는 1911년에 화주 보허축전(寶虛竺典)이 관음ㆍ신중탱을 봉안하고, 1931년에 주지 김용태(金瑢泰)가 천축사로 오르는 길을 확장하였으며, 이후 수많은 신도들이 천축사 도량에 불사하여 1936년에 현재의 모습을 갖춘 가람이 조성되었다. 지금의 가람은 주지 용태스님 이후인 1959년에 중수된 것으로, 현재 주지 현공(玄公)스님이 주석하며,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대웅전을 비롯하여 독성각ㆍ산신각을 중수하고 요사채와 공양간을 신축하여 천축사 가람을 복원하였다.
문빈정사 20151229 영업/정상 222-2202   5 4,000    
안양암 20051227 영업/정상 02-763-4100   0 -    
일선사 19891108 영업/정상 379-8697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6길 79-141 (평창동) 0 -   827-898년 도선국사가 창건
고려 탄연묵암 대선사(1070-1159) 중창
이조 자초 무학왕(1327-1405) 함허득 통선사 주석함
제 1차 불교정화때 탄허 큰스님 주석 시인 고은(일초) 주석함
석정덕 스님 수호가람 중창불사(1966-1997)
청용사 19880725 영업/정상 763-4803   0 -   고려태조 5년(922녀) 도선국사의 유언으로 태조의 어명에의거 창건
안양의 의정룡 산능에 지엇다하여 청룡사로 하였으며 제1대 주지 혜원 비구니를 임명
우산국 통일 기도를 올리게 하였고 조선조 태조의 즉위후 공민왕비 에비가 청룡사에 출가 하였 고 그리고 조선조 세조 2년(1456) 단종의 비 송씨가 우와부에서 단종을 이별 하고 출가 이곳에 서 65년간 살았으며 그 후 영조때 정업원 구기비가 세워졌고 해방 이후 윤오비구니가 대대적으 로 중창함
소림사 19880725 영업/정상 394-2145   0 -   조선태조 5년(1396년) 혜철화상이 태조의 명에 의거 창건하여 소림굴이라 하였고
1817년(순조때) 관해스님이 중건 하였으며 현 대웅전은 1970년 5월에 중건
1978년 현재 주지 혜윤 스님이 부임
대각사 19880725 영업/정상 765-0972   0 -   1911년 4월8일 백용성 대선사가 창건
1921년 삼장의 조직 한글로 경전을 대대적으로 번역 흥보 대각교 창립
1928년 4.5 대각일요학교 설립 삼상학회 기관지 우아 간행
1965년 9.11 문교부에 종교법인 재단법인 대각사로 인가
조계사 19880725 영업/정상 732-2183   0 -   1910년 한용운 이수길 이희광 스님 등에의해 각황사라는 이름으로 창건
1938년 총본산 낙성과함께 태고사라 부름
1954년 조개사로 개칭
봉녕사 19680418 영업/정상 256-4127   20 7,000   1208년 고려 제21대 희종4년에 원각국사가 창건하여 성창사라 명명함
1469년 조선 제9대 성종원년 혜각국사가 중수후 봉녕사라 개칭
신흥사 20021203 영업/정상 031-357-2695   4 7,000   서해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사적 217호로 지정된 구봉산 당성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는 본 신흥사는 1934년 덕인 스님이 한영석 거사의 시주로 창건하였습니다.
당성은 고구려 영유왕때 덕과 예술과 문학을 겸비한 선비를 보내 달라는 고구려의 요구에 의하여 당나라에서 팔학사를 보내어 그중 홍학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중국 문물을 받아들인 곳이며, 군사 요충지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곳입니다
봉림사 20021203 영업/정상     2 1,000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덕여왕 때(재위 647∼654) 고구려의 침략을 불교의 힘으로 막기 위해 창건한 호국사찰이다. 당시 궁궐에서 기르던 새가 절 주위 숲에 날아와 춤을 추었으므로 봉림사라 하고, 산 이름도 무봉산으로 바꿨다고 한다. 1621년(광해군 13)에 법당과 종각·요사를 중수하였으며, 1708년(숙종 34)에도 중수한 바 있다. 1978년에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복장(腹藏)에서 사리가 발굴되었고, 1979년 이 사리를 봉안한 탑을 세우면서 봉향각과 종각도 다시 지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봉향각·망양루·범종각·요사채 등이 있고, 유물로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탱화 여러 점이 전한다. 1978년 대웅전의 목조아미타여래좌상에 금색을 입힐 때 복장에서 불상의 유래를 전하는 기록과 각종 불경이 발견되었는데, 이 기록에 따르면 불상은 1362년(고려 공민왕 11)에 만들어졌다고 하며, 배 부분에서 의상을 U자형으로 처리하고 옷의 주름을 3줄로 표현한 점 등에서 고려 후기의 불상 양식과 일치한다. 눈을 수정으로 만든 점이 특이하다. 1984년 4월 10일 보물 제980호로 지정되었다.
보타사 20030605 영업/정상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초평로 1571 1 2,000   1875년 두타산 칠부능선에 암자를 창건 계승하다가 1968년 김영옥 스님이 계승하고 1976년 취약성 독립가옥으로 철거 된후 800M쯤 내려와서 현재의 위치에 사찰을 창건하고 불법승 삼보의
보자와 두타산의 타자를 따서 보타사로 명명 현재에 이르고 있음
미륵사 20030605 영업/정상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미륵댕이1길 13-5 2 1,000   1938년 서정옥싸가 현재 석조관세음보살입상 작은 암자를 세웠으며, 1950. 6. 25사변으로 소실된 후 미륵사를 건립하여 사찰을 유지
그후 김맹석씨가 89-90년 까지 20평의 법당과 80평의 요사를 3층 현대식 건물로 건립하여
사찰로 면보를 갖추고 있음
광덕사 19880528 영업/정상   충청북도 증평군 도안면 상그린로 239 1 100   창건은 고려시대경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 중창을 했다고 하나 기록은 없고 1949년 석불의 몽조를 얻어 이묘연 보살이 석불옆에 초암3칸을 세우고 광덕리의 광덕을 따서 광덕사라 명명함
금지암 19880618 영업/정상 834-5420   0 -   조선시대에 창건한 것으로 전함
절의 샘에서 금리어가 나왔다고 하여 이름을 금지암이라 했다함.
무량사 19880618 영업/정상 836-5066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무량로 203 0 -   신라말 통효국사 범일(810-889)이 창건 고려시대에 크게 중창했음
조선시대에는 김시습이 이절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1493년(성종 24) 입적했음
고란사 19880618 영업/정상 835-2062   0 -   언제 누가 창건했는지 알 수 없음.
백제때 왕들이 노닐기 위하여 건립한 정자였다는 설이 있음.
현재의 건물은 1931년에 신축하여 1960년에 보수함.
백률사 19621010 영업/정상 054-772-8634   0 -    
보덕암 19881012 영업/정상 054-775-1129   0 -    
천룡사 19881012 영업/정상 054-748-2901   0 -    
주사암 19881012 영업/정상 054-751-2816   0 -    
금정사 19881012 영업/정상 054-751-2689   0 -    
연지암 19880721 영업/정상 054-744-7314   0 -    
기림사 19880721 영업/정상 054-744-2292   0 -    
망월사 19621015 영업/정상 054-745-7579   0 -    
보리사 19621020 영업/정상 054-748-0794   0 -    
분황사 19621010 영업/정상 054-742-9922   0 -    
석굴암 19621030 영업/정상 054-746-9933   0 -    
불국사 19621030 영업/정상 054-746-9911~3   0 -    
보광사 19881005 영업/정상 061-322-1822          
보광사 19881005 영업/정상 061-322-2698   4 350   보광사는 1942년 개인이 별장으로 지은 건물을 개조하여 사찰로 운영하고 있다.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72호인 범종을 소장하고 있는 사찰로써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높은 절이다.
용천사 19880727 영업/정상 322-1822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 용천사길 209 2 5,000   용천사의 창건에 관한 기록은 [咸平龍泉寺熟石壘階勸文] 과 [咸平龍泉寺大雄殿제板丹靑記]에 보인다. [咸平龍泉寺熟石壘階勸文]에서는 신라의 行恩尊者가 용천사를 開山하여 海門大叢林으로 만들었다고 하고 [咸平龍泉寺大雄殿제板丹靑記]에서는 당의 玄宗朝(172~756)에 國幸師尊思어가 창건했다고 한다. 두 기록을 보았을 때 용천사는 통일신라때 창건되었다고 할 수가 있다. 또한 [咸平龍泉寺大雄殿제板丹靑記]에 따르면 용천사는 정유제란(1597)때 병화를 당한 후 1632년(인조 10)에 대웅전이 중창되었다고 하며 6년 뒤 1638년(인조 16)에는 부속건물이 새로 지어지고 1705년(숙종 31)에는 다시 한번 중창이 이루어 졌다. 이후 19세기 후반에는 懸雲선사가 퇴락한 건물을 중수하였다고 한다. 근년에 접어들어서는 6.25동란시 전소되었다가 1964년부터 錦堂스님에 의해 대웅전이 복원되었고 1996년도에 다시 한번 대웅전이 복원되었다. 함평군에서는 사역 전체에 대한 시굴조사를 포함한 종합조사를 실시하여 용천사의 창건연대와 건물지의 분포, 사역의 범위 등을 밝히고 정비복원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자 전남대학교 박물관에 조사를 의뢰하여 발굴조사를 실시함.
정각사 19880618 영업/정상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왕릉로정각사길 165 0 -   백제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며 연혁은 전하지 않음
조왕사 19880618 영업/정상 835-4091   0 -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 1919년 김병준이 중창
무진암 19981125 영업/정상 836-5023   0 -   무량사의 암자로 매월당 김시습 부도등 고승들의 부도를 지키기 위해 조선시대에 건립 되었음.
조선 중종25년(1530)에 보현사로 개칭되었다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시 전소된 것을 조선말엽 중건 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대웅전등을 복원 오늘에 이르고 있음.
오덕사 19880618 영업/정상 834-8245   0 -   신라 경덕왕 18년 원효가 창건한 것으로 전함.
대조사 19880618 영업/정상 834-2511   0 -   성왕 4년 겸익이 창건함.
고려 원종(1259-1274)때 진전이 중창
보광사 19880721 영업/정상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현충로 51-352 0 -    
법계사 20080115 영업/정상 973-1450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지리산대로 320-292 5 100   서기 544년(신라 진흥왕 5년)에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천하의 승지(勝地)가 이곳이라 하여 천왕봉(天王峯)에서 약 3km쯤 떨어진 곳에 처음 절을 지은 것이 현재의 법계사라고 한다. 그러나 여러 차례 외적의 침입에 의하여 소실되어 폐허가 되었던 것을 끊임없는 노력으로 1981년 다시 세워 오늘날 지리산을 지키는 명찰로 거듭나고 있다.
또한 법계사에는 적멸보궁 우측에 위치한 법계사 삼층석탑(보물 제473호)은 바위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몸돌 각 모서리에는 기둥을 넓게 새겨 양식의 간략화와 투박한 느낌을 주고 있어서 전형적인 신라석탑 양식에서 벗어난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추정된다.
심적사 20040518 영업/정상 973-1769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웅석봉로 495 1 -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929년(신라 경순왕 3) 창건되었으나 이후의 연혁이 전하지 않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1950년 6·25전쟁 때 불에 타자 동봉(東峰)이 이 절에 모셔 두었던 십육나한상을 인근 삼봉산 동룡동(東龍洞)으로 옮겼다가 1976년에 절을 중창한 뒤 다시 가져와 모셨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나한전과 요사채 등이 있다. 주전각이 나한전인 것으로 보아 나한도량임을 알 수 있으며, 내부에 십육나한상과 10구의 불상이 함께 모셔져 있다. 이들 불상은 모두 조선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원사 20050127 영업/정상 055-973-0535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대하내원로 256 2 485    
정취암 20030408 영업/정상 055-972-3339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둔철산로 675-87 1 220    
심적정사 20030408 영업/정상 055-973-1388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꽃봉산로133번길 15 1 125   신라 경순왕 3년에 이 곳에 세워졌는데 웅석봉으로 이어지는 산세가 힘있게
동쪽으로 내달아 양쪽산맥이 감싸는 곳에 터를 잡고 있다. 또한 산중턱에 위치하여 원
경이 시원스럽다.
율곡사 20030408 영업/정상 055-973-6011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율곡사길 182 1 125   신라 진덕여왕 5년 원효대사의 창건으로 전해오나 현재의 대웅전은 조선중기의 건물이다. 이 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다듬은 돌 바른층쌓기의 기단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민흘림 두리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내·외3출목으로, 기둥 위와 기둥사이 평방위에 모두 짜 올린 다포식으로 되어 있다. 첨차가 내외 모두 교두형으로 조선 초기의 양식을 이루고 있으나 외목도리를 고정시키고 있는 조각의 모양으로 보아 조선 중기의 건축이라 추측된다. 정면 창호는 팔각 불발기와 띠살을 혼합한 특이한 모양을 이루고 있다.
대원사 20030408 영업/정상 055-972-8068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평촌유평로 453 25 500   신라 진흥왕9년(548년)에 연기(緣起)조사가 창건하여 평원사(平原寺)라 하였다. 그 뒤 1천여년 동안 폐쇄되었던 것을 조선조 숙종 11년에 운권(雲捲)선사가 문도들을 데려와 평원사의 옛 절터에 사찰을 건립, 대원암(大源菴)이라 개창하고 선불간경도량을 개설하여 영남 제일의 강당이 되었다. 조선조 고종 27년에 혜흔(慧昕)선사의 암자가 무너져 크게 중건하였다. 서쪽에는 조사영당을 보수, 동쪽에는 방장실과 강당을 건립하여 대원사라 개칭하고 큰스님을 초청하여 설교를 하니 전국의 수행승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대원사에는 깊은 산 속에 호젓한 산사가 깃들여 있다는 사실과, 절집의 맑은 분위기, 그리고 비구니들의 용맹정진하고 있다는 숙연성 때문에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곳이다.
지곡사 19981130 영업/정상 055-972-2954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웅석봉로 396 1 278   이곳에 절터만 남아있는 지곡사(智谷寺)는 통일신라때 응진(應眞)스님이 창건하여 처음 절이름을 국태사(國泰寺)라 하였고 고려초에 혜월(慧月)스님에 이어 진관(眞觀)스님(912∼964)이 크게 중창하여 고려전기에는 선종 5대산문의 하나로 손꼽히는 대찰이었으나 1913년 전후에 폐사되었다.
천축사 19880718 영업/정상 02-954-1474          
만월암 20050128 영업/정상 955-3719   2 3,500   672년 義湘大師가 창건, 義湘臺와 天竺寺를 창건하기 전에 기거하던 곳으로 1784년 석불개금을 하였고 1938년 正觀 徐光前과 安普德씨가 증건하였다. 1941년 8월 退耕 權相老가 萬月庵記를 쓰고 善悟스님이 1999년5월19일 石佛坐像이 有形文化財 제121호로 지정될 수 있도록 하였고 2002년10월15일 慧空스님이 중수 하였다.
전등사 19960108 영업/정상 032-937-0125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로 37-41 5 1,400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에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진종사"라 칭함
실상암 19881028 영업/정상 063-653-3384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금산로 56 1 160   1936년 10월15일 순창읍 순화리에 거주하는 李佳化(일명 正實行)와 주운대사(柱雲大師)의 제기로 창건하고 성가불상을 봉안하였다. 다시 1938년에 관음보살상(觀音菩薩像)을 봉안하였다. 1972년 이상호(李相昊)가 대웅전을 중건하였다. 이 절을 창건할 때 순창여자 중학교에 위치(玉泉寺의 경내)하고 있는 3층석탑으로부터 상서(祥瑞)로운 빛이 이곳에 비쳤다고 해서 절 이름을 실상암(實祥唵)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경내에는 대웅전, 요사채2동, 석탑, 관음보살상이 있다.
대모암 19881028 영업/정상 063-653-3549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장류로 197-22 1 200   1933.10.26일에 박동식(朴東植)과 청신여신도(淸信女信徒)등 30여명의 제기(祭起)로 학성선사(鶴成禪師)가 창건하였다. 그후 6.25동란으로 절의 여신도들은 각기 분산되어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이후 1952년에 이문용(李文容)외 3명의 승려가 관리하여 왔으며. 그동안 침체된 절을 1973년에 다시 법당을 중수하였다. 1993년에 강선동스님이 대웅전을 신축하여 기존의 법당을 요사채로 활용하여 오다가 2004년 남영복(정오)스님이 개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만일사 19881028 영업/정상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안심길 103-134 1 100   384년(백제 침류왕 원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673년(백제무왕)대 건립되었다고 전함.
그후 조선 초 이성게가 임금이 되기전 나옹선사와 그의 제자인 무학대사에 의해 중창
1596년 저유재란때 소실된 것을 지홍대사와 원충대사가 다시 중창하였으나 6
.25동란으로 완전소실
1954년 청신여사 김인숙의 시주와 그의 신도들의 도움으로 대웅전과 삼성각 요사채 건립
만일사라는 명칭은 무ㅏㅎㄱ대사가 이성계를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하고자 만일동안 이곳에서 기도를 올렸다고 하는데에서 유래됨.
원래 무학대사가 중창한 만일사는 현사찰이 있는 곳에서 북쪽으로 200여 미터 올라가 위치하고 있었다고 하나 1954년 현 건물을 중찰할 때 지금의 위치에 축조하였다.
강천사 19880728 영업/정상 652-5420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강천산길 270 2 300   887년(신라 진성여왕 원년) 도선국사가 창건 강천사의 원명은 복천사(福 川 寺) 또는 복천사(福 泉 寺)라 하였음(대동여지승람 제39권) 순창편에 복천 ( 川 )사라 기록되어 있고, 1760년(영조36녀) 경진판(옥천군지)에는 복천(泉)사라 하였고 기록되어 있음. 도 거기에는 칭강천사(稱 剛 泉 寺)라 하였다. 이보다도 훨씬 앞서 선조 때 학자 구봉 宋 翼 弼이 강천사에 유숙하며 칭강천사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었으니 이미 선조 때에도 강천사라 일부에서는 불렀던 것으로 추정(중종이후)할 수 있음.
옥천군지 경진판에는 불전이 셋이요 승방이12방이란 기록이 있으며, 전설에 의하면 소속 암자가 12개라고 전하고 있으나 옥천군지에는 5개의 암자만 기록되어 있음.
강천사 소장 문화재로는 1316년(고려 충숙왕 3년)에 덕현선사 세운 강천사5층석탑(유형 제92호)과 강천사 모과나무(기념물 제97호)가 있음.
백운사 19880727 영업/정상   경기도 의왕시 왕곡로 323 (왕곡동) 0 -   원래 19세기말 창건되었다고 하며, 현재의 위치보다 31킬로미터 올라간지점에 있었으나 고종 31년(1894)산불로 소실되어 현재의 자리로 옮겨 새로지었다.대표적인 스님으로는 경흔,금오스님이 계시고, 1097년 정화스님이 주석하면서 법당을 확장하고 요사를 증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계사 19830919 영업/정상 426-2221 경기도 의왕시 청계로 475 (청계동) 0 -   신라시대창건고려충열왕10년(1284)시중 조인규에 의해 중건/사원규모와배치는 조선시대전형
조선연산군이도성내 사찰을 없애고자하자 불교측에서 이곳을 선종의본산으로 정하였다.
조선숙종15년(1689)에 세운 '청계사사적기비'가 있고, 조선후기 건축물인 극락보전이 있다.
극락보전 중앙엔 아미타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고,좌우에 관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이 협대하고 있다. 그외 산신각,요사,삼성당,감로지등이 있다.
광은사 19881025 영업/정상 031-987-2796   0 -    
금정사 19620927 영업/정상 031-984-3235   3 145    
용화사 19621030 영업/정상 031-984-3234 경기도 김포시 금포로 1487-5 (운양동) 2 200    
총림선원 20060126 영업/정상 055-752-6491 경상남도 진주시 망진산길 71 (망경동) 1 10    
응석사 20030518 영업/정상 754-7056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응석로 435 0 -    
성전암 20030518 영업/정상 754-7056   0 -    
두방사 20030518 영업/정상 761-6351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동부로781번길 267 0 -    
의곡사 20030518 영업/정상 741-4710 경상남도 진주시 의곡길 72 (상봉동) 0 -    
연화사 20030518 영업/정상 743-6921 경상남도 진주시 향교로42번길 13 (옥봉동) 0 -    
도덕암 19881012 영업/정상 976-8380   2 1,000   서기 360년경 창건하여 고려 광종 19년 혜거국사가 중수하여 칠성암이라 칭하였음.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광해군 12년 중수하고, 효종 4년 기성대사가 중수하였으며
철종 4년 중수하여 도덕암이라 개명하였음.
대둔사 19881012 영업/정상 971-6662   5 250   신라고찰이라 구전되나 연대는 확실치 않음.
200여년전 경자년에 수해로 요사전채가 매몰되어 사찰역사와 서류일체를 분실하였음.
대웅전은 92년도 수해시 붕괴되어 중수하지 못하고 조립식 건물을 건축하여 사용하고 있음.
영명사 19881012 영업/정상 973-1842   2 70   창건자 이명열은 고아로서 만년에 의지할 곳이 없어서 이곳에 사찰을 건립
만년을 의지하였음
송림사 19880721 영업/정상 976-7922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송림길 73 6 2,000   신라 내물왕때 창건되어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대웅전, 명부전이 큰 피해를 입었으나 후에 중건하였음.
대웅전 현판글씨는 숙종대왕 친필임.
목불 3점은 채색이 화려함.
경내에 보물 제189호인 송림사 5층전탑이 있음.
월영사 20060123 영업/정상 713-2553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하귀동남2길 40-16 0 -    
보덕사 20060123 영업/정상 753-2183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독짓골8길 26 (도남동) 0 -    
월정사 20011011 영업/정상 742-7755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연로 216-5 (오라이동) 0 -   ○1871년 토굴을 이용 불사를 일으켜세운 후 1983년
사찰의 면모를 갖췄으나 4.3사건으로 모든 건물이 전소
○그 수 1974년 부터 현 주지스님에의해 불사를 시작하여 현재의
사찰 모습으로 조성하였으며 최근에는 소장 목조보살입상과
니조예래좌상이 제주도 지정문화재로 지정
불탑사 19910412 영업/정상 755-9283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원당로16길 41 (삼양일동) 0 -   1914년 안봉려관스님과 안도월 스님에 의해 창건
4.3 사건으로 폐허된 것을 1953년 이경호 스님이 재건
월성사 19911010 영업/정상 (064)773-0054   1 100   1932년 안봉려관 스님에 의해 창건
1956년 김월봉 스님에 의해 현위치로 옮김
1985년 대웅전 확장공사
천왕사 19940830 영업/정상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1100로 2528-111 (노형동) 0 -    
호국사 20030518 영업/정상 741-4394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71 (남성동) 0 -    
청곡사 20030411 영업/정상 055-749-2054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월아산로1440번길 138 2 200    
수도암   영업/정상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수도길 1438 0 -    
신흥사 20030425 영업/정상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연명2길 257-212 3 300   신라 흥덕왕 9년(834년)도의선사가 창건하였으며 1901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59년 설우스님이 중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음
고방사 19880721 영업/정상 431-6823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벽봉로 1444-143 3 1,000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1719년에 수천대사가 현위치로 옮겨 중창하였음
용화사 19880721 영업/정상 054)430-0111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봉산1로 160 3 800   조선인조(1640년경)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관음석불 입상이 노천에 있었는데 1927년 대웅전을 건립하였음
계림사 19880721 영업/정상 436-5048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1길 212 3 500    
봉곡사 19880721 영업/정상 437-1305   10 300   도선국사가 창건할 당시에는 대소전각이 40여동이 될 만큼 웅장한 사찰로 전해지나 임란으로 소실되어 현재는 쇠락한 모습으로 심산유곡에 위치해 있음
청암사 19880721 영업/정상 437-0038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2길 335-48 140 5,000   신라 헌안왕 3년 도선국사가 창건 조선인조25년 서산대사가 중창하고 화엄종을 선양하였으며 일제시대 김대운대사가 현재의 건물을 중창
직지사 19880721 영업/정상 054)436-6174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직지사길 95 60 20,000    
적조사 20060105 영업/정상   서울특별시 성북구 흥천사길 49-23 (돈암동) 0 -    
정법사 19930225 영업/정상 762-9570   0 -   정법사는 원래 종로구 가회동에 있던 건봉사(乾鳳寺) 포교당이었는데 1960년 이곳의 조그만 암자인 복전암(福田庵)으로 이전하였다. 즉 정법사가 위치한 가회동은 수행처로 적합한 분위기가 아니었으므로 이 암자를 인수하여 정법사로 개칭한 것이다. 이곳에 있었던 복전암이 언제 어떻게 창건되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현재 정법사에 봉안되어 있는 범종과 열반도(涅槃圖)가 1922년에 제작된 것임을 확인 할 수 있는데 이들이 복전암의 유물이라는 점을 추측 할 수 있다. 정법사 부근의 요정 대원각이 전일에 후궁 터였다는 점에서 복전암이 후궁들의 기도처였던 것은 아닐까 추측된다. 정법사는 대웅전·팔상전·사천왕문·산신각·요사3동 등 7채의 건물 외에 미륵불상이 세워져 있다. 대웅전은 정법사가 이전해 올 당시 서대문 신학대학에 있던 황태자궁을 이전해 온 것이다.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지장·관음 등의 불상과 1918년에 그려진 열반도·후불탱화·현왕탱화 등이 있다. 1969년에 건립된 팔상전 내부에는 석가모니불과 청동으로 만든 천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보문사 19881126 영업/정상 928-3797   73 30,500   보문사(普門寺)는 '탑골승방'이라는 옛 사찰이름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는 곳으로, 이전에는 조계종 소속 사찰이었으나 1972년 세계 유일의 비구니종단인 보문종(普門宗)을 창종하면서 보문종의 본산이 되었다. 이 절은 고려 예종 10년(1115)에 담진(曇眞) 스님 즉,혜조국사(慧照國師)에 의하여 창건된 것으로 전승되어 오는데 조선 후기 숙종 18년 (1692)에 묘첨 스님이 대웅전을 중건하였고, 영조 33년 (1757)에 보찬, 유봉 스님이 대웅전을 수축하였다. 순조 26년(1826)에 정운(正雲)스님이 좌우승당(左右僧堂)을 개축하였으며 헌종8년(1842)에 영전 스님이 또 다시 대웅전을 수축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절이 황폐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광복과 함께 주지 송은영(宋恩榮)이 취임하면서 30여년간을 불사(佛事)의 중흥과 건물 중창에 전심하여 대사찰의 면모을 갖추었다.
내원사 19881126 영업/정상 941-2001~4   5 1,150   내원사(內院寺)는 성북구 정릉도4동 산1번지, 북한산 국립공원 입구에서 산쪽으로 약 1km정도 올라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사찰규모는 크지 않지만 산중 사찰 분위기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실제로 내원사의 창건시기나 정확한 사찰명 등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점이 남아있는 상태이나, 고려 현종 19년 지눌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내원사라는 절이름에 대해서도 정확한 고증에 어려움이 따른다. 내원사의 전 주지스님은 1969년경 대웅전을 새로 지으면서 이전 건물에서 내원사라는 이름이 나왔기 때문에 현재까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경국사 19880728 영업/정상 914-5447   12 6,000   경국사는 북한산 동쪽에 자리한 고려시대의 사찰이다.고려 충숙왕 12년(1325)에 자정율사(慈淨律師)가 창건하여 청암사(靑巖寺)라 하였다. 이 사찰은 옛부터 정토사상에 바탕을 둔 기도도량으로 유명하다. '경국사 사적기'에는 문정왕후의 중창 이후 '부처님의 가호로 국가에 경사스러운 일이 항상 있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청암사를 경국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일제 때인 1921년부터는 단청(丹靑)과 탱화 조성에 일가를 이루었던 보경(寶慶:1890~1979)스님이 60년간 주지로 머물면서 절을 새롭게 변모시켜 나갔다. 1950년대에는 이승만대통령이 보경스님의 인격과 태도에 감화되어 몇 차례나 찾아왔고, 1953년 닉슨 미국 부통령이 방한하였을 때도 이 절을 찾아왔다.
봉국사 19880728 영업/정상 919-0211   12 8,000   봉국사는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의 원찰(願刹)로 정릉길 옆에 위치한 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이 절은 고려말 공민왕 3년(1354)에 나옹대사(懶翁大師)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하는 설도 있고, 조선초 태조 4년(1395)에 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당시 왕사(王師)였던 무학대사에 의해 창건된 호국 사찰로 약사사(藥師寺)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법당에 약사여래를 봉안한 관계로 약사사라 하였다. 조선 후기 현종 10년(1669)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神德王后)의 정릉을 수봉(修封)하고 태묘에 제사를 드리게 되면서 정릉의 사초(沙草)를 새로 하는 동시에 정자각(丁字閣),안향청(安香廳),전례청(典禮聽) 등을 새로 세우면서 이 절을 원찰(願刹)로 하였다. 이 때 나라를 받든다는 뜻에서 절 이름을 봉국사로 고쳤다. 그러나 이후의 절 역사는 잘 알려지지 않으며, 조선말 임오군란(1882)때 봉국사가 소실된 것을 한계(漢溪)·덕운(德雲) 두 스님이 힘을 모아 이듬해에 중건, 1898년에 명부전을 중건, 1913년에는 칠성각을 중건, 1979년 10월에 절 입구에 일음루(一音樓)를 건립, 1994년에 안심당을 지어 스님들의 수행정진과 신도들의 신행처로 사용하고 있다.
개운사 19880728 영업/정상 926-4069   190 7,000   성북구 안암동5가 157번지의 안암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개운사(開運寺)는 한국 근ㆍ현대 불교사의 전개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다. 도량의 규모는 그다지 큰 편이 아니지만 '불교개혁의 근원지'라든가 '불교 교육의 근본도량'이라는 수식어가 이런한 개운사의 비중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고 하겠다. 특히 1981년부터 중앙승가대학의 교육장으로 정착되면서 개운사는 미래의 한국 불교를 이끌어 나갈 인재양성의 산실로 기대를 받고 있다.
개운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1396년(조선 태조5년) 무학대사가 영도사(永導寺)를 창건하였는데, 이것이 개운사의 전신이라는 설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내용이다. 즉 무학대사가 도성 동쪽 5리쯤에 영도사를 창건한 후, 1779년(정조 3년)정조의 후궁 원빈(元嬪)홍씨가 죽자 명인원(明仁圓)이라는 무덤을 영도사의 곁에 조성하게 되는데, 명인원으로 인해 영도사는 왼쪽 등성이 몇 리쯤으로 옮기게 되었으며 이때 사찰이름도 개운사로 고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개운사 창건을 전후한 이러한 내용은 뚜렷한 문헌에 수록된 것은 아니며, '사전(寺傳)' 또는 '사기(寺記)'라는 표현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흥룡사 20071122 영업/정상 535-7363   3 300    
왕산사 20070618 영업/정상 031-533-3245   0 -    
관음사 20031222 영업/정상 755-6830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산록북로 660 (아라일동) 0 -    
동악사 19880721 영업/정상 054-652-1212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충효로 448 0 100   예천읍의 좌청룡에 해당되는 냉정산 중턱에 있는 태고종 사찰인 동악사는 절터에 대한 기록이 없어 내력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고 다만 전하는 말에 의하면 150여년 전 지금의 동악사 주지의 할아버지가 현몽으로 발굴해서 동악사를 건립했다고 한다. 보광명전(寶光明殿)에는 광배(光背)와 받침대인 대좌(臺座)를 잃은 채 안치된 석조 비로자나불좌상(문화재자료 146호)이 있다.
손의 모양은 왼손을 가슴 앞에 들어 올려 검지를 세우고 오른손으로 감싸 쥔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어 비로자나불임을 나타내고 있다.
무릎이 높고 넓어서 안정감은 있으나 가슴이 평박하게 처리되어 어깨가 움츠려든 느낌이 든다. 조각 수법이나 양식으로 보아 전형적인 9세기말의 불상으로 추정된다.
서악사 19880721 영업/정상 054-655-0109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대심1길 160 1 500   서악사(西岳寺)는 예천군 예천읍 대심동 산13번지 봉덕산(鳳德山) 중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이다. 절의 창건은 언제 이루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시대 신문왕대에 의상 대사가 이루었다고 전한다. 서악사는 본래 이 지역의 동서남북 사악(四岳)에 있던 절 가운데 하나였다.
보문사 19880721 영업/정상 054-653-0771 경상북도 예천군 보문면 보문사길 243 1 520   보문사는 신라 문무왕(文武王) 16년(676)에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처음 건립한 고찰로 1300년 역사의 가람이다. 개창된 뒤 여러 차례의 재난으로 도괴된 것을 고려 명종(明宗) 14년(1184)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머무르면서 극락전을 비롯하여 염불당, 나한전, 반학루, 원당, 운계암, 조실 등 7동의 건물을 복원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고 극락전과 반학루 및 삼층석탑이 남아 있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극락전은 조선 중·후기 건축양식이 절충되어 나타나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1700년 후반의 건축으로 주심포계(柱心包系)와 익공계(翼工系) 양식이 절충되어 나타난다.
용문사 19880721 영업/정상 054-653-8695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용문사길 285-30 3 2,000   용문사는 신라 경문왕(景文王) 10년(870)에 두운(杜雲)이 처음 건립하였다 전한다. 이 건물은 고려 명종(明宗) 7년(1177)에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의 일부를 간직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조선 헌종(憲宗) 6년(1665)에 다시 지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점으로 보아 17세기에 다시 지어진 건물로 추측된다. 장대석으로 바르게 쌓은 석축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이다. 기둥 위에 공포(拱包)는 다포(多包)로 장식하고 지붕은 맞배로 하였다.
내부는 마루를 깔았고, 중앙 뒷면에 불단을 마련해 좌우 협시를 거느린 작은 여래상을 안치하였고, 후불 벽에는 목각탱을 달았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목각후불탱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불단(佛壇) 앞쪽 좌우에는 고려 명종(明宗) 20년(1190)에 설치되고, 인조(仁祖) 3년(1625)에 중수된 회전식 윤장대 (輪藏臺)가 1개씩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곳뿐이다.
관음사 19880720 영업/정상 582-8609 서울특별시 관악구 승방1길 109-80 (남현동) 4 8,000   신라 제56대 진성여왕 9년(895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후 이조시대를 거쳐 1924년 석주스님이 중건하고 1974년에 진성당 종하사가 주지로 부임 재차 중건을 시작하여대웅전, 용왕각, 심시불의 비문석탑을 세워 1977년에 준공하여 지금의 절이 됨.
자재암 19881025 영업/정상 865-4045 경기도 동두천시 평화로2910번길 140 (상봉암동) 0 -    
적석사 20010108 영업/정상 032-932-6191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연촌길 181 2 500   고구려 장수왕4년(416) 천축조사가 창건하였다 전하며 조선 중종 39년(1544) 및 선조 7년(1574)등 수차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현존 대우전은 1984년에 건립된 건물임.
청수암 19960108 영업/정상 032-934-2661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청하동길36번길 62-1 3 350    
청련사 19960108 영업/정상 032-932-0886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고비고개로188번길 112 3 350   고구려 장수와 4년(416)에 천축조사가 창건하고 청련사라 함
백련사 19960108 영업/정상 032-933-5082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고려산로61번길 270 7 2,500   고구려 장수왕4년(416)에 천축조사가 창건하였다 전하며 그후 여러차례 중수한 기록이 있음
정수사 19960108 영업/정상 032-937-3611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해안남로1258번길 142 2 300   선덕여왕 8년(639) 회정대사가 창건하여 淨修寺라 했다.
조선 세종 8년(1426) 함허대사가 중창하였다수 하며, 중창시 법당 서쪽에서 맑은 물이 나와 淨水寺라 개칭하였다 함.
보문사 19960108 영업/정상 032-933-8271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삼산남로828번길 44 5 3,000   석실은 천연동굴로 선덕여왕 4년(635) 회정선사가 창건하엿다 전하며,
1957년 주지 배선주가 나한법당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홍제사 19880721 영업/정상 054-672-3410   4 500   봉화군 소천면 고선리 산 127- 6번지에 위치하며 여러차례의 화재로 소실되어 유래를 상고하기는 어렵다. 신라 진흥왕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는 하나 진흥왕때에는 원효대사의 재세이전이므로 문무왕때 창건되었을 것으로 본다. 이 사찰에는 조선왕조 제14대 선조때 사명대사가 허물어진 사찰을 중건하였으며, 그때는 사명대사가 임진왜란때 승병을 이끌고 왜군을 토벌한 군공을 세우고 선조로부터 시호를 받은 뒤였기 때문에 이 사찰은 광대하고 사명대사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많은 승려들이 이곳에서 기거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대사는 이절을 중건하시고 시호를 따서 홍제사라 명명하였다고 전해온다. 이 절에는 사명대사와 서산대사의 영정을 모셔왔는데 1960년초에 소실되고 현재의 사찰건물은1966년3월에 중수되었다.
각화사 19880721 영업/정상 054-672-2207   30 2,500   각화사는 686년(신라 신문왕 6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숙종때 (1101년) 무애국사가 중건하였다, 고려 제15대 숙종 6년(1101)에 무애국사가 중건한 바 있고, 조선 제22대 정조 원년(1777)에 다시 중건하므로서 당시 국내 3대사찰의 하나로 손꼽혔으며 800여 승려가 수도하였다고 전하여 온다. 현존하는 법당은 1920년에 재건하였다가 1967년에 당시 주지 현우가 중창하였으며 200관 무게의 범종은 1979년 주조한 것이다. 1606년에는 삼재(물, 불, 전쟁의 재난)가 들어오지 못하는 이곳에 태백산 사고를 건립하여 왕조실록을 수호한 국내 3대 사찰의 하나가 되었다. 1906년에 도적들이 사고와 절을 불태웠을 대 영월루만 남았다. 1910년 경화 화상이 대웅전을 다시 세웠고, 1926년에 달현 스님이 법당을 비롯한 5채의 건물을 다시 지었다. 지금의 모습을 1992년부터 동춘선사가 축대와 석축 계단을 쌓아 도장을 정리하고, 대웅전, 선실, 원응요(살림집), 영월루 등 7채의 건물을 새로 지어 완공한 것이다. 각화사와 가까이 있는 서동리의 춘양중.상업고등학교 부지에는 각화사의 전신인 남화사지가 있다. 원효대사는 이절을 옮겨 각화사 창건
청량사 19880721 영업/정상 054-672-1446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청량산길 199-152 5 2,500   도립공원 청량산 한복판에 자리잡은 청량사는 신라 제30대 문무왕 3년 663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 청량산은 자연경관이 수려하여 한때는 신라의 고찰인 연대사와 망선암등 27개소의 사암이 밀집되어 당시 불교의 요람을 형성하였다. 신라의 명필 김생, 최치원등 석학들이 여기에서 수련하였으며 고려 제31대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으로 이곳에 피난와서 많은 유적을 남겼다. 또한 성리학의 대가 퇴계이황도 여기에서 학문을 닦은후 유학으로 대성한 곳이다. 경상북도 지정문화재인 유리보전의 현판은 공민왕이 이곳에 머무를 때에 친필로 쓴것으로 전하고 있다.
연화정사 19880728 영업/정상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 자석로14번길 157 0 -   소장문화재 자석리 미륵불상(경기도 문화재자료 제41호)
신흥사 19880728 영업/정상 641-0156   0 -   연대미상
영월암 19880728 영업/정상 635-3457 경기도 이천시 경충대로2709번길 388 (관고동) 0 -    
수리사 19881025 영업/정상 031)438-1823 경기도 군포시 속달로 347-181 (속달동) 2 2,100   신라 진흥왕(540-576)때 창건되어 왕손인 운산대사가 夢佛受記(몽불수기)" 부처님을
동혈사 19880618 영업/정상 041-854-2855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동혈사길 77 2 70   천태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으며 서혈사, 남혈사, 북혈사 등과 더불어 공주지역의 4혈사로 전해온다
東穴寺는 일명 銅穴寺라고도 한다.
이 절이 언제 세워졌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창건을 전하는 말로 원효대사라는 의견이 있어
1400년전으로 추정되며 원효대사가 수련했던 장소로 전해지는 사원지가 있음
현재 절터에는 조선후기의 것으로 보이는 2동의 건물지와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3층석탑,
조선시대의 부도가 남아 있으며 절터 뒤편 암벽에는 자연동굴 형태의 동굴이 남아 있음
동학사 19880618 영업/정상 042-825-2570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동학사1로 462 160 500   724년(신라 성덕왕 23년)에 상원조사가 암자를 지었으며, 회의화상이 상원이라는 절로 확대시킴
신라멸망시 유차달이 신라의 시조와 박제상을 제사하기 위해 東鶴寺를 건축하였고 사찰이름도
東鶴 이라 칭함
전설에 의하면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동학이라 하였다 함
921년(고려태조 4년)에 도선국사가 중건하고 1864년(고종 즉위년)에 보선선사가
여러 건물을 새로 지었으며 동학사는 이때 지은 건물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
1960년 승가대학을 개원하였으며 전국의 많은 비구니들의 교육의 전당이 되고 있음
신원사 19880618 영업/정상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신원사동길 1 8 3,000   백제 의자왕 11년(서기651년) 고구려 보덕화상이 창건
940년(고려태조23년) 도선국사가 중창
조선 1393년(태조2년) 무학선사 중창, 1876년(고종 13년) 보연화상 중창
고종 22년 관찰사 심상훈이 중수하면서 어순한 나라가 일신 발전하여 신기원이 이루어지기를
염원하여 神院寺를 新元寺로 고침
神院寺가 말해주듯 기도하는 터를 의미하는 것이며 중악단(中嶽壇)은 계룡산의 주신을
모신 곳이란 뜻임
국제선원은 1988년 개원 이래 한국불교의 국제화를 촉진하는 곳임
영은사 19880618 영업/정상 041-855-3976 충청남도 공주시 공산성길 59-22 (금성동) 2 3,000   조선세조 4년(1458년) 사액으로 국가에서 창건
광해군 8년(1616년) 승자를 두어 전도사찰을 총관하였다고 전해짐
영은사의 관일루는 임진왜란시 승병의 합숙소였으며 이곳에서 훈련된 승병이 영규대사의
인솔로 금산전투에 참여
마곡사 19880618 영업/정상 041-841-6221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40 1,000   - 서력기원 643년(불기 1187년) 신라의 고승자장율사가 창건하였으며, 보철화상
때 설법을 듣고자 모인자가 계곡을 가득 메운 것이 마(麻)와 같다고 하여 마곡사
(麻谷寺)라 하였다고 함.
- 웅진인이며 신라말기의 승려인 보조선사에 의해 중건되고 고려시대 명종대
보조국사가 중수, 그후 범일, 도선, 긱순등이 중창을 계속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 조선시대에는 세조가 신행하여 영산전(靈山殿)이란 3자을 하사하였다는 내용이
전함.
갑사 20080222 영업/정상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갑사로 567-3 0 -    
용굴암 19880927 영업/정상 937-8206 서울특별시 노원구 덕릉로129가길 242 (상계동) 1 1,500   조선시대 고종 19년건립
학림사 19880901 영업/정상 02-930-1700 서울특별시 노원구 덕릉로129가길 241 (상계동) 2 5,000   671년 신라 31대 문무왕때 원효대사가 창건
본원정사 20050624 영업/정상 902-7337 서울특별시 강북구 삼각산로 1 (수유동) 1 50   본원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로서 1923년 비구니 손덕선스님이 창건하였는데
삼각산 태고사라는 고려시대의 역사깊은 사원터 였다고 전해지고 있음. 특히, 사찰에 소장되어 있는 목조지장보살좌상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36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전체적인 형태가 18세기 초기 불상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조선후기 목조각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검사 20050219 영업/정상 998-4046 서울특별시 강북구 삼양로179길 209-44, 신검사 (우이동) 3 200   삼각산 중턱에 자리잡은 법안사는 신라시대때 창건되었다고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오래된 석축과 신라시대 여래상으로 추정되는 불두, 고려시대 나한상 등 경내에서 발견된 여러 유물로 미루어 라시대에서 고려초기에 창건된 사찰임을 알 수 있다.
입구에 돌로 쌓아 만든 석축이 있는데 돌의 모서리가 둥글둥글하게 되어 있어 오래된 석축임을 알 수 있다.
삼성암 19920923 영업/정상 988-1996 서울특별시 강북구 인수봉로23길 235 (수유동) 5 1,500   조선조 고종 9년(1872년)에 창건하여 소란암이라 하였는데 고종 19년(1882년)에 박선묵 스님이 독성각을 짓고 삼성암이라 개명하였다. 1936년 동운스님이 칠성각을 짓고, 1941년 중현 스님이 법당을 개축하였다. 이 곳은 산세가 수려하며 기도장소 등으로 많은 시민이 찬는 곳이다.
용덕사 19880927 영업/정상 993-1767 서울특별시 강북구 삼양로179길 209-81, 용덕사 (우이동) 2 1,000   1910년 건립된 사찰로서 이 장소가 용의 입모양을 하고 있다 하여 용덕사라 불렀다. 대웅전 옆 큰 바위에 약사여래불을 새겨 모시고 있다.
보광사 19880927 영업/정상 993-3808 서울특별시 강북구 삼양로145길 176 (우이동) 6 5,000   조선 정조 12년(1788년) 금강산에서 수도한 원담스님이 창건하여 신원사라 하였다. 6.25전쟁으로 많은 건물이 소실되었고, 일부 건물이 보존되어 1980년 11월 보광사로 개명되었다.
축서사 19880721 영업/정상 054-672-7578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월계길 739 12 3,000   신라30대 문무왕 13년(673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물아면 개단리에 지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하룻밤 묶게 되었는데 지금의 축서사 자리에 밝은 빛이 비추어 이곳에 찾아오니 비로자나 부처로 인하여 빛이 일어 이곳에 축서사를 건립하였다. 한다. 축서사의 내역은 인도에서 신성시하는 독수리(鷲)는 불경에서 문수보살의 화현으로 상징되므로 이곳에 살고 이는 독수리를 의미 한다고 전한다. 조선조 제19대 숙종31년(1705년)에 기록한 법당의 상랑문 기록에 의하면 절 앞에 광명루라는 큰 누각이 있었으며 법당이 5채 승방이 10채 있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천수암외 1개소가 해발1000M지점의 문수산 정상 가까이 있었으며 50여 승려가 수도하여 오다가 화재로 절 전체가 불타 없어지고 100여년 전에 법당일부가 중건되었다.
혜원정사 19970213 영업/정상 866-7771 부산광역시 연제구 고분로68번길 47 (연산동) 6 2,500   1925년 당시 부근 마을에 살고 있던 김덕만이라는 노인이 땔감 나무를 구하려고 이곳 산에 왔다가 옛 절터를 발견하고 부부가 함께 다음생에 왕생 극락할 것을 발원하고 가산의 일부를 어렵게 마련하여 기와로 된 삼칸의 불당을 건립하여 오로지 염불로 여생을 지내다 죽고 그후 자손들이
계승하여 십여년을 이어오다 자손들이 흩어지고 관심을 두지 않게 되자 폐사가 되었고,
그후 1975년 혜원정사 조실스님 고산대화상이 사찰 건립터를 답사하던중 이곳 터를 발견하고 사찰을 건립하게 되었다
구ㅡ휴ㅜ
금용암 19881205 영업/정상 501-6300 부산광역시 연제구 성지곡로 111 (거제동) 2 -   이조말(1852년경) 점술가 노인(이씨)이 이곳에 오두막집을 짓고 이를 지왕당(일명) 삼신당이라 하고 마당에는 포구나무를 심고 살았으며, 또한 이곳 산이름이 장수산으로 투구모양을 하고 있으며 건너 보이는 쪽에 애기봉이 있어 절터로서는 좋은곳이라 함
사람들이 이 노인에게 찾아와 소원(주로 애기를 점지해 달라는 내용)을 말하면 점술을 통하여 정확한 점괴를 알려주어 소원성취를 하였다고 함
해방되던 해 대붕이란 스님이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이곳에 와서 불사를 일으켰다고 함
마하사 19880719 영업/정상 852-2436 부산광역시 연제구 봉수로 138 (연산동) 2 -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하여 오고 있으며, 확실한 근거는 없으나 일설에 의하면 아도화상께서 경북 선산군 도리사를 창건하시고 10년후쯤 마하사를 창건하였다고 함으로 531년경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설에 의하면 동지팥죽을 끓이는데 불씨가 없어 황령산 봉화수직인에게 나한님이 불씨를 얻어다 불을 지피게 하고 팥죽을 끓이게 하였다고 함
또 절마당에 벼를 말리고 있는데 새떼들이 벼를 먹고 피해를 많이 주므로 주지가 나한전에 가서 기원하였더니 나한님의 신통으로 새떼를 쫓아 버렸다함
봉정사 19930203 영업/정상 041)942-2094   1 60    
장곡사 19880618 영업/정상 041)943-6769 충청남도 청양군 대치면 장곡길 241 1 300    
팔성사 19890322 영업/정상 351-5562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비행로 1455-94 3 3,400   백제무왕때 해감스님이 창건함. 현재 팔공사내 8개 암자중 하나 였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음.
미륵암 19890322 영업/정상 351-3952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초장길 51-61 1 100   신라 또는 고려시대 유물로 추정되는 석불을 모시고 있으며 나라의 길흉에 따라 석불의 색깔이 변한다고 전해져 오고 있음.
성관사 19990706 영업/정상 353-0396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 장무로 492-83 9 4,000   성관사는 조선시대 창건된 사찰로 조선후기까지 존재하다가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95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원흥사 19880728 영업/정상 351-3922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원흥길 102-6 0 -   통일신라때 사찰이 있었으나 사찰이 폐사되고 석불만 있었는데 1830년 허씨부인에 의하여 창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음.
신광사 19880728 영업/정상 353-0598 전라북도 장수군 천천면 신광길 31 2 250   신라 경문왕 5년(865) 무량국사가 창건. 1598년 정유재란때 전소되었던 것을 1649년에 전해선사에 의해 중수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음.
영월암 19890322 영업/정상 351-1148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봉서로 182-135 1 150   달을 가장오래 볼수 있다 하여 영월암이라함. 절에는 토굴이 있어 삼한시대부터 이름난 위인들이 이토출에서 수행하였다함.
영원사 20030124 영업/정상 962-5639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마천삼정로 544-644 3 50   통일신라시대 영원조사가 창건한 이래 서산, 청매, 사명, 포광스님 등 당대의 선지식들이 주석한바 있는 수도도량으로 영원사에 보존된 조실안록의 기록에 의하면 소실전에 100칸이 넘는 9채의 건물로 웅장한 가람의 모습을 지녔다고 한다. 서산대사의 법사인 부용영관스님을 비롯한 조실스님이 109명이나 있었으며, 청매스님의 방광사리탑과 각운선사의 염송설화가 얽힌 필단사리탑 1기가 말사인 상무주암에 있다.
사찰입구의 부도군에는 서상면에 소재한 영각사를 창건하고 화엄경팜을 각한 설파상언 대사의 부도가 있어 대사의 불제자가 센운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건물은 여순반란사건과 6.25 전란으로 완전소실후 새로 부분 복원되었다.
보림사 19750410 영업/정상 963-2471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1길 3-1 2 300   1912년 벽송사 주지스님 김동운 화상이 건립 1929년 인근 6개사찰이 연합 운영하면서 부속사업으로 유치원을 운영한 바 있으며, 1970년 해인사 조영산 화상이 부임하여 보림사라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음
용추사 19731103 영업/정상 962-4638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용추계곡로 623 2 500   신라소지왕 6녀(484) 각연대사가 창건한 옛 장수사와 4대 부속 암자중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사찰로 6.25동란때 소실되어 1953년 안의면 당본리에 있는 봉황대에 별원을 차려 놓았다가 옛터의 복원을 추진하여 1959년 재건하였다.
벽송사 19731103 영업/정상 962-5661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광점길 27-177 10 150   1520년 조선태고종 5대 정통인 벽송 지엄대사가 창건한 사찰로서 처음에는 벽송암이라고 했으나 1704년 소실되었다가 중건되었으며, 6.25동란으로 다시 솔실되었다가 30여년 전 신도들이 불사로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상연대 19860118 영업/정상 962-8585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산길 3-291 2 100   신라시대 경애왕 1년(924) 고운 최치원 선생이 관음기도를 하던중 관세음 보살이 나타나 상연이라 이름하여 창건한 이래 신라말에는 구산신문의 하나인 실상신문을 이곳에 옮겨와 신문의 마지막 보루가 되었으며, 그후 역대의 고승, 대덕스님들이 수도 정신해 도던 곳으로 천여년의 영험 어리고 신령한 수도 도량이다.
금대암 20030326 영업/정상 962-5500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천왕봉로 1035-337 1 400   신라말 656(태종3년) 행호조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는 본 사찰은 신라 도선국사가 참배지로 인정했으며, 고려 보조국사, 서산대사가 수도 성취하였다는 구전이 있음
6.25동란때 소실되었으나 금대암 복구기성회가 조직되어 옛 모습을 되찾음
청평사 19880528 영업/정상 033-244-1095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오봉산길 810 0 -   고려 광종 24년 백암선원으로 창건되어 조선 명종(1557) 청평사로 개명
테스트 사찰   영업/정상            
상원사 19881021 영업/정상 033-244-6753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박사로 169-47 0 -   삼악산에 위치한 사찰로 신라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나 1858년도(철종 9년) 금강산에서 온 풍계선사가 중건했다고 함
내원사 19880920 영업/정상 042)531-3901 대전광역시 서구 배재로197번길 200 (도마동) 1 40   1928년 연덕화보살이 창건.
1965년 현 주지 손법전이 중건한 후 태고종에 가입
1994년 시지원 법당신축
- 계:48,260천원 30,000천원(시비)
1999년 문화관광부 지원 법당신축
- 계127,260천원(국비:54,500천원,시비54,500천원,자비18,260천원)
흥국사 19880727 영업/정상 061-686-5635 전라남도 여수시 흥국사길 160 (중흥동) 9 3,000   -1195년 고려19대 명종25년 보조국사 창건
-1559년 조선13대 명종14년 몽고족 침입 전화
-1560년 조선13대 명종 15년 법수대사 중수
-1624년 조선15대 인조2년 계특대사 중수
-흥국사는 절이 흥하면 나라 흥한다"고 하는 구태민안의 기원이 담겨 있는 사찰로서
용문사 19880727 영업/정상 0662-683-6400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용문사길 91 1 3,000    
은적사 19880727 영업/정상 0662-644-1864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돌산로 1168-58 1 1,000   -고려명종 2년(1172)보조국사 창건
-은적암(문자39)호
석천사 19881005 영업/정상 061-666-1770 전라남도 여수시 충민사길 52-21 (덕충동) 1 2,700   -1195년 보조국사 창건
-1599년 승군대장 옥형 스님 중창
한산사 19880725 영업/정상 061-642-6333 전라남도 여수시 구봉산길 114 (봉산동) 2 1,000   -고려명종 24년 보조국사 창건
-임진왜란때 전소되었으나 1926년 수원 대화상 복원
-1993년 국종열 스님 중창
백련사 20050127 영업/정상 061-782-7572 전라남도 구례군 구례읍 사동길 129-8 (백련사) 3 300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경내의 건축 양식 등의 형태로 보아 조선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통사찰로 2005년 전통사찰로 지정
죽림정사 20050127 영업/정상 061-782-1225 전라남도 구례군 용방면 죽정길 170 0 -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경내의 부도의 형식으로 보아 조선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로
2005년 전통사찰로 지정
사성암 20030219 영업/정상 781-4544 전라남도 구례군 문척면 사성암길 303 0 -   신라 진평왕 4년(582)에 연기조사가 창건.
조선 인조 8년(1630) 중수하여 순종때 현 법당 신축
천은사 19880727 영업/정상 781-4800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노고단로 209 0 -   신라 흥덕왕 4년(828) 덕운조사가 창건하여 원통암이라 불리어 오다 조선숙종 4년
천은사라 개칭
연곡사 19880727 영업/정상 782-7412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피아골로 774 0 -   신라 진흥왕 4년(543)에 화엄증조인 연기조사가 창건,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고 인조때
태능조사가 중건하였으나 강희 4년에 전소되었음. 1965년에 대웅전을 중건하였음
화엄사 19880727 영업/정상 782-7600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0 -   신라 진흥왕 5년(544)에 연기조사가 창건. 선덕여왕 12년(643)에 자장율사가 증축.
이조 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리고 인조 8년(1630)에 현암선사가 중건

 


■ 관련 자료

행정안전부_전통사찰(수시)_20210731.xlsx
0.96MB

 

 

■ 링크

원본 자료의 관련 링크는 아래와 같다.

https://www.data.go.kr/data/15045113/fileData.do

 

행정안전부_전통사찰(수시)_20210731

민족문화의 유산으로서 역사적 의의를 가진 전통사찰의 정보 데이터로 인허가일자, 영업상태, 사업장명, 소재지주소 등의 정보 확인이 가능합니다.


* 좌표계 : 중부원점TM(EPSG:2097)

www.dat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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